선교지탐방(인돈)

인도네시아 뽄띠아낙 선교지 탐방 후기

새벽이슬-woo,An 2006. 9. 8. 00:33
 

인도네시아(뽄띠아낙) 선교지 탐방


탐방출발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의 수도, 뽄띠아낙(Pontianak)이 딸 혜경이가 사역하고 있는 현장을 향하여 출발하면서 기대에 찻었다.

4년이란 긴세월 동안 사역하고 있는 딸을 만날 기대를 하며 인천공항-홍콩-자카르타에 도착하니 혜경이가 마중나와 있어 공항에서 포옹의 기쁨을 누렸다.

우리팀원(팀장 정영균목사님,박세범,김주현, 노화영,손화정,이태정,노지영,채미영)들은 별어려움없이 공항인근  호델에서 여장을 풀고 감사기도를 드리고 밤10시가 조금 지났지만 현지의 밤거리를 조금 구경하고 이내 호텔에 들어와서 인도네시아에서의 첫날밤을 보내었다.

첫째날 

6시에 기상, 자카르타 공항으로 달렸지만 짙은 안개로 뽄띠아낙행 비행기는 3시간 가량 연착한 끝에 겨우 뽄디아낙으로 날아가서 Borneo For Christ 소속의 혜경이 사역지인 차세대지도자훈련원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강신오선교사님 프레지오 승합차에 몸을 실고 인근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 바로 식사였다. 이상한 냄새 위생상태도 그리 양호해 보이지 않는 뷔폐 모양의 반찬들, 먹기 꽤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팀원들은 그래도 억지로라도 먹어치우는 듯했다. 선교사역자들은 별 저항없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인돈에 적응하여 있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식사후 환전(사설환전소, 달러 지폐가 새것이 아니면 돈을 까고 환전이 된다니 이해가 안 되었지만)을 하고, 첫날 탐방지를 가기위해 스피드 보터선착장으로 가서 보터를 빌려 타고 약 3시간30분쯤 걸려 정글지역인 딴중브링인에 도착하였다  그곳의 생활은 70년대의 우리나라 정도의 생활수준이었다. 오후 5경에 도착하니 현지인들이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현지인 교회에서 도착기도를 드리고 자매들은 풍선만들기 하면서 현지인 어린이들과 금새 친해져 즐거운 교재의 시간을 갖었고, 형제들은 현지인의 요청에 의하여 배구시합(5전 2승,3패)을 하였는데 이들과 금방 친해질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강변에서 더러워 보이는 물이지만(목욕중에 작은 물체가 닥아 오길래 보았더니 용변의 잔유물이 어서 기겁을 했다) 현지인과 함께 목욕을 하고 현지인들 집에 한사람씩 분산되어 미리 준비하여 가지고 간 라면 한 개씩을 지참(손님들에게 귀한 음식이라 하여)하고 저녁식사초대에 응하였는데  손님들 왔다고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불을 켠 집도 있었고 발전기가 없는 집에는 호롱불 아래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 식사후 수요일 공식예배는 없지만 우리가 방문하였다고 주민들(약 80가구)에게 집회에 참석하도록 연락이 되어 현지인 약 80여명과 현지인 교인들과 뜨거운 찬양의 시간에 어린아이, 남,녀, 노,소  모두가 하나가 되어, 진지하고 뜨겁게 그리고 감격적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언어가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생활환경은 다르지만 주를 찬양하는 가슴 가슴은  동일함을 느끼며 정영균 목사님의  열정적인 말씀선포, 강신오선교사님 열정적인 통역, 그들은 너무 진지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우리교회 정목사님이 이곳에서 말씀선포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는가(물론 하나님은 그 일을 미리 계획하고 계셨지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배 중에 우리팀의 주님의 날개아래(Lingkupi Ku)인도네시아어 찬양과 워쉽찬양(생명주께 있네 등)으로 예배를 마치고 병든자들을 위하여 강선교사님과 정목사님, 우장로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어린아이, 남자,여자 모든 분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뽄띠아낙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그리 크지 않은 목선 통통배에 올랐다. 배 안바닥은 삐뚤 삐뚤하였고 누울만한 공간도 없어 보니는데 한쪽 넒은 곳에서는 현지인들이 위통을 벗어져치고 포카놀이에 열중이었다. 우리는  염치불구하고 남,여 뒤 범벅이 되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여 자는둥 마는둥 하며 먼동이 터는 아침까지 약 10시간의 항해를 하다

우리의 선교사들은 이런 험난한 길을 즐거이 오가며 정글지 현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쏟는 것을 보면서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방향을 깨닭게 되었다,


둘째날

아침 7시경에 시간이 너무걸려 중간지착지에 내려서 대기한 승합차로 훈련원으로 이동하였다.

우리 팀은 차세대지도자훈련원 숙소에 8시경에 도착하여 첫째날 탐방소감 나눈 후 빵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둘째날 탐방지 음방아이 정글지역을 향하여 강선교사 프레지오 차량으로 이동을 시작, 도로사정을 말할 것도 없었고, 음방아이로 가기위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만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려서 정글지를 달리기를 한참 만에 어둑어둑한 밤에 얀 사역자가 섬기는 음방아이 현지인 교회에 도착하여 그곳 사역자가 준비한 저녁(밥과 간단한 반찬)을 간단히 먹고 저녁집회에 참석했다.

이 교회는 교회가 세워진 이후 외국인의 방문은 처음이라 하였다.  우리가 방문한다고 인근 지역에 있는 3개 교회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떠거운 찬양, 정목사님의 설교, 혜경선교사가 통역을 하고 우리 팀들의 워쉽찬양을 드리고 또한

얀사역자가 기타를 치고 어린아이 5세정도일까 “그리스도의 계절“ 찬양을 인도네시아어로, 그리고

한국어로 진지하게 정확한 발음으로 부르는 찬양으로 모두가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에 잠기게 되었다

이곳 성도들은 찬양과 예배에 대한 사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예배의 홍수속에 빠져 예배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은 예배의 형식이 많지 않나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리스도의 계절"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 오게 하소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의 마음과 교회와 가정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여주소서

주의 청년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게하소서

한손엔 복음들고 한손엔 사랑을 들고

온 땅 구석구석 누비는 나라 되게 하소서

이 땅 구석구석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소서

하늘의 뜻 이 땅에 이뤄주소서 주의나라 되게 하소서

주의 청년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게하소서

한손엔 복음들고 한손엔 사랑을 들고 온땅 구석구석 누비는

나라 되게 하소서

주의 청년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게하소서

한손엔 복음들고 한손엔 사랑을 들고 온땅 구석구석 누비는

나라 되게 하소서


찬양의 가사와 같이 이들은  인도네시아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기를 소망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얀 전도자는 일류대학에 다녔는데 그의 부인과 함께 대학공부를 포기하고  이슬람 부모들의 반대와 그들 부모들이 불참한 가운데도 이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결혼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사역에 임하고 있는  영혼을 향한 뜨거운 그리스도의 가슴으로 충만한 사역자 부부를 주님이 사용하고 계심을 보며 감사하게 되었다

저녁 예배 후 어우려져 현지인 모두와 악수를 나누고 교회당 인근 냇가로 가서 우리 일행은 시원한 냇물로 목욕을 하고 교회당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준비한 모기장을 치고 우린 나눔의시간을 가지고 현지인 교회를 위하여 통성기도한 후 취침했다

아침식사후에 이동하기전  이들 사역자들의 복음을 향한 열정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팀 정목사님이 얀 전도자에게 던진 질문을 통해서 였다 “ 혹시 한국방문을 초청한다면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이 질문에 그는 인돈에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흰눈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런 충격적인 말을 했다 “ 한국보다 북한을 가보고 싶다고” 그래서 다시금 “왜 북한을 가보고 싶어 하느냐고, 우리 한국을 방문하고 싶지 않는냐”고 되 물었더니 그는 “북한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고, 예수믿다가 잡히면 죽음음 당하는 곳이기에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북한을 가보고 싶다는 부연설멷을 듣고 우리 또 다시 한번 크다란 충격의 감동을 먹었다.

얀사역자는 진정 영혼을 향한 불타는 복음의 열정을 가진 사역자임을 우린 모두 인정할 수 밖에 없

었다 그는 현지의 교단의 방침에 의하여 다시금 복음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미전도 종족이 살고 있는 다른 정글지역으로 한 주 후에 옮긴다는 말을 듣고 참 마음이 아팠다.

이젠 정착단계에 있는 교회를 떠나 새로운 험난한 사역지로 옮기며 사역해야 하는 얀 전도자에게 축복송으로 축복하고 뚜한 멈버리 까띠(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를 외치며 격려하였다


아침에 세면을 하면서 우리 선교사역자들이 인돈사람의 생활에 잘 순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우리 팀원들은 세면할 때 먹는 생수로 양치질을 하였는데 강선교사나 혜경이는 그곳의 흐르는

물(양치질 하기엔 좀 그런 물)에 잇빨을 닦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생수로 양친질 하려다가 그들처럼

흐르는 냇물에 양치질을 하면서 인돈사람과 똑 같이 생활하고 있는 이들 선교사역자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참 많았다 우린 너무 편하게 생활하고,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세째날

9시쯤인가 얀 전도자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 교회를 출발하여 약 12시 쯤에 소속지역에 있는 현지인 신학교를 방문했다

이곳은 강선교사가 현지의 BFC 단체의 이사들과 협의하여 신학교운영비를 서로 반반 부담하기로약속하고 세운 신학교로서 정식 인가가 난 신학교라고 했다 (이들에게 모든 것을 지원해 주는 것 보다 그들도 경제적인 부담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때문이 었다함)

그러나 그들 학교의 이사들과 학교장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정상적인 신학교로 운영이 어렵운 실정이지만 다시금  현지인 사역자 양성을 위하여 정성을 쏟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소망은 기숙사(약 25명정도가 생활할 수 있는)와 신학교가 정글지이기에 교수들이 거쳐할 수 있는 교수관 2동정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것을 위하여 약 한화로 15OO 만원정도가 소요된다고 강력한 기도의 부탁이 있었다.

이곳에는 남학생 약 15명, 여학생7명, 현재는 교장은 공석이고, 교무처장이 학교를 운영한다고 했다. 이들은 오전에는 신학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일하지 않으면 학교운영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우리 팀들의 워쉽찬양을 하고 이들과 합동으로 통성기도를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이동을 시작하여 약 1시경에 어느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고 이동을 시작하여 저녁무렵에 뽄띠아낙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전통음식점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자매들 일부는 입에 맞지 않는지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어린이 전도협회 사역자 집 등으로 한사람씩 흩어져서 홈스테이에 들어 갔고 나만

혜경이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혜경이와 함께 사역하는 박만희선교사님(2달째)가 그 전날 무리해서 인지, 이곳의 풍토병인지 열병을 앓아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집에 없어 아쉽고 미안했다.  선교사역자들의 애환을 볼 수 있었다.

무었 때문에  그런 고생하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정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린 가슴을 쓰려 내렸다.


넷째날

아침 7시경  홈스테이로 흩어진 팀원들 차세대지도자훈련원에 모두 모여 빵과 사과(사온것)로 식사를 하고 조금 쉰 다음 10경 차량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어린이전도협회사무실로 이동하여 그곳의 사역자(총18명)들과 나눔의 시간을 가지고 여기서도 우리 팀 워쉽 찬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역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인도네시아는 모든 국민이 5대종교(기독교,천주교,이슬람교,   )중 한가지 종교를 의무적으로 가져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겉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모든 백성을 무슬림화 즉 이슬람교도화 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기독교는 많은 박해를 받고 있으므로 외국인 선교사에 의한 자국민의 선교는 너무 어려우므로 자국민을 선교사역자로 양성하여 전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강선교사님은 이 훈련원을 통하여 자국민 선교사역자로 140명의 크리스천 지하드를 조직하고 1200명의 제자훈련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이들은 시간의 십일조들 드린는 생활로 1시간 성경말씀 묵상하고, 1시간이상 기도하며 사역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강선교사님은  전도협회사역자들에게 3년정도 최소한의 사역비(약 30만원)을 주고 3년동안 잘 적응하는 사람을 사역자로 정식사역자로 하여 월 70여만원의 생활비를 지급하면서 이들이 진정 복음을 위하여 일하도록 양육하며 지도한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내로 동부칼리만탄에도 선교센타를 세우는 일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한다고 했다

우린 이들을 후진국민으로서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지만  이들 사역자들은 한국교회의 영적회복을 갈망하는 중보기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이들을 향한 우리의 생각이나 편견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곳의 사역자중 나이든 무리자매가 사고로 인하여 오른이 거의 절단되어 손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어 강선교사님이 그 자매에게 왜 부끄러워하느냐고, 당당하게 그냥 있는 그대로 있어라고 했는데 우리가 방문했다고  손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에 돌아가서 의수를 좀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냥 의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렇게 말했겠는가.

우리도 그렇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한국에 돌아가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들은 오른손을 신성시 하는데 하필 오른손이 절단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의 상쳐가 컸겠는가.

그러나 그 자매는 그것을 극복하고, 저주받은 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줄 알면서도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모습이 참 귀하게 보였다.  예수생명이 있기에, 생활에 불편하겠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자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우린 전도협회 사역자들과 점심을 하기를 원했다 승합차를 타고 그들의 오토바이에 우리 팀원들이 나눠어 타고 시내 유일한 소핑몰내 음식점에서 그들과 참 즐거운 식사를 나누었다. 그들이 즐거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끼 식사라도 나눌수 있어서 참 좋았다.

우린 얼마나 풍요속에 살면서 투정부리며 짜정내며 불평하며 지내는가,  그들은 삶의 모습은 후진국의 생활이었지만 우리보다 더 마음편하게, 행복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오후에 차세대지도자 훈련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가 너무 맛있어 커피쇼핑을 조금하고 적도탑을 구경하고 어느 이슬람사원내에 들어가서 시설을 살짝 둘려보았다. 생명없는 종교에 생명걸고 있는 이들이 참 불쌍한 영혼이 아닌가. 우린 주님으로 인하여 너무 큰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행복한 자들이다. 이어  엤날 어느 왕족이 살았다던 왕궁을 구경하고 또 전통혼례식을 하고 있는 마을에 혼례식하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축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훈련원으로 돌아 왔다.

오후 4시경 훈련원의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  엘톤 인가 하는 고등학생의 인도로 찬양의 사간을 가진후 정목사님 설교, 혜경이 통역으로 예배를 드리고 우린 내일의 인도네시아의 희망인 이들을 보면서 감사하며 통성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이들이 잘 훈련받을 수 있도록 공부방, 예배실을 허락하소서, 고3학생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알 수 있도록, 이들이 매일 매일 말씀묵상을 통하여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주소서 라고 통성으로 강력하게 기도를 드리고 훈련원 아이들과의 예배를 마쳤다

그리고 오후 6시쯤인가 오전에 어린이전도협회사역자들과 식사했던 몰의 식당으로 가서 이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아이들에게 무었먹고 싶나고 하니 이구동성으로 치킨이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조촐한 저녁이지만 이들은 얼마나 좋아하며 식사를 하던지 좀더 잘 해 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뿐이었다. 우리들의 자녀들은 얼마나 풍요한 가운데 지내는지  늘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혜경이 친구 무슬림 신봉자인 뷰스바도 같이 만나 저녁을 나누었다. 그녀는 좀 부유한 가정인지 우리 혜경이 보다 얼굴에 살이 통통하였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박만희 선교사 문병을 했다. 우린 모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주를 위하여 수고하는 사역자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자매를 아프게 하면서 까지 보여주신 것 아닐찌?

처음으로 혜경이가 사역하고 있는 차세대지도자훈련원에서 우리 팀 형제들이 자고, 혜경이 자는 집에서 자매들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다섯째날

주일 아침6시에 기상하여 세면하고 빵으로 식사한후 8시에  훈련원에서  주일예배 (강선교사님 말씀)를 드리고 현지인 교회( 어느교단 총회장, 신학교 교수 시무)로 이동하여 현지인과 함께 예배드리고 한국에서 왔다고 특별찬양부탁이 있어 찬양을 드렸다

예배후에 숭하이까갑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강물위의 수상 식당이 었지만 식당아래 강물에는 온갖 쓰레기로 범벅이 되어 있는 곳이었지만 혜경이라 우리 팀과의 마지막 점심이라도 전망이 좋은 곳으로 베려한 곳이라 했다. 그래서 즐거운 식사를 하게 되었다점심을 먹고  다시 박만희선교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우리 문병을 갔다. 그곳에선 가장 좋은 병원이라지만 우리가 보기엔 시설이 낙후되어 있었다. 불편해 보이는 침대에 누워있는 자매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우린 눈물을 훔치며 작별을 하고  훈련원으로 돌아와서 출발준비를 끝내고 14명의 훈련원의 아이들과 어우려져 작별의 사진을 찍었다. 우리 팀들은 이곳 훈련원에 합숙하며 학교에 다니며 또 신앙훈련을 받고 있는 이들과 한컷의 사진이라도 더 찍을려고 공항으로 출발할려고 기다리는 강선교사님의 승합차가 우릴 제촉하는 듯하여 아이들을 한사람 한사람 안아주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나는 이들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순응하며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 원주민선교사(박용하,조경지)의 카페에서 읽었던 글 중에 “다녀간 단기선교팀이 많은 전리품(사용하다가 남기고간 일용품을 지칭)을  남기고 가서 감사하다는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나도 가져갔던 침낭이며, 모기장, 슬리퍼, 반바지, 치약, 물파스, 손전등, 먹을려고 준비한 감기약 봉지까지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었지만 무었인가 더 주고 싶은데 더 줄 것이 없어 아쉬음만 주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뽄띠아낙 공항에 도착하여 자카르타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강선교사와 혜경이와 작별을 했다.

우리가 방문하여 선교사님들을 만났을 땐 기뻤고 한주간의 탐방이 기대되어 우린 들떠 있었는데 작별의 시간 우리의 마음은 냉정하게 까라 앉아 있었다.

딸과 포옹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 하나님아버지 딸의 사역지를 방문하여 만날 수 있게하여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젠 우린 헤어져 서울로 돌아 갈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딸과 함께해 주실꺼죠. 주님이 항상 동행하여 주실 것 믿고 돌아갑니다. 은혜 베푸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사이에 짦은 침묵이 흐른 뒤 서로 악수하고 작별의 손을 흔들며 우린 탑승을 위하여 공항내부로

들어와 항공기에 몸을 실고 자카르타에 도착하여 전일의 호텔에서 하루밤을 묵고 이틑날 아침 홍콩을 거쳐 서울로 향하면서 인도네시아 선교지 탐방은 막을 내렸다.


선교지 탐방 후기


우리팀들 각자 많은 은혜를 받고 귀중한 체험을 하였다.

나는 탐방의 여행중에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 무었 때문에 이곳에 왔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그 대답은  딸의 선교사역지를 돌아보며 딸을 위로 격려하고 보고 싶은 딸을 만날려고 오지 않았나?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지를 다니면서 보면 볼수록

하나님이 이 선교지를 보고 선교지를 위하여 무었인가 일하기를 기대하신다고 생각이 되었다

- 얀사역자가 섬기는 일을 위하여 무었이 필요한가?

- 신학교 기숙사와 교수관의 증축으로 사역자를 양성하기를 소망하는 그들.

-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차세대지도자훈련원의 시설이 너무 열악하여 한방에 여러 명의 아이    들이 함께 있으니  공부하기도, 경견의 시간 갖기도, 예배드리기도 어려운 형편을 보면서 내일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이라면 시급히 이들이 기도하고 소망하고 있는 대로 2층을 증축(약 1800만원    소요)할 수 있도록 지원이 되어야할 필요성을 보게 하심이 아니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 돌았다.


그런 것 같았다. 선교후원, 선교후원을 자처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대가 있음을 깨닭게 하기위해 인도네시아 땅을 밟게 하신 것이 분명한 것으로 느껴졌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  이 땅을 밟게 한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미약하지만 주님의 기대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누군가는 이땅을 위하여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기를 주님이 원하고 계신다고 생각되었다.

주님이 원하고 계시는 일을  이들 선교사들이 지금 감당하고 있음을 보게 하셨다.

또 우리는 앞으로 어떻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결심하며 다짐하게 하셨다.

또한 우리들의 자녀들이, 선교후원을 한다는 우리 교회가 더 효과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선교후원사역이 되게하기 위하여 중직자들도 선교현지를 많이 볼 수 있어야 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여행이었다.

우린 먹을 것이 풍부하여 먹고 살을 뺄려고 다이어트하고 운동하느라 땀 흘리면서도 불평이지만

선교사역자들은 잘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에 걸릴 지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아버지가 방문했다고 차린 아침의 식탁에 밥 한그릇, 풀반찬 한가지, 김치조금(앞서 선교탐방팀들이 남기고 갔다고) 뿐이 었다.

우린 비만이지만 선교사역자들과 인돈 백성들은 허리가 등에 거의 붙은 것 같았다.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배부른 상태임을 볼 수 있었다.

우린 영적인 영양실조는 아닌지를 살펴 보아야겠다고 되 뇌이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속에서 팀원중 세범형제와 선교지 탐방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를 하였는데 세범형제는 내년에도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이와 같은 선교지탐방을 할 수 있는 베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교회적으로 안된다면 개인적으로  중고등부 반 학생들을 데리고 선교지탐방을 하면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공감하였다.

당회에서 앞으로 정책을 세울 때 선교지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여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게 되었다. 


기회를 청년들에게 제공하여 준 당회와 우릴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출발하기 전 탐방팀원과 함게

 

 음방아이에서 저녁집회때  정목사님 설교와 통역중인 우선교사 

 

   선교사역중인 딸과 음방아이로 가는 도중 배위에서 

 

 음방아이 교회 담당사역자 "얀" 그의 아들, 강신오선교사

그는 진정 인도네시아 영혼을 사랑하는 자였다

 얀사역자가 섬기는 교회앞에서 아침에 헤어지기전 축복송으로 축복하며 

 

 소속이란 지역의 보르네오 신학교에서 우리 팀들 워쉽찬양으로  

 

딸이 사역하는 차세대지도자훈련원의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강선교사와 정목사님과 포즈

어린이전도협회의 사역자들,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린이전도협회 사역자들과 차세대지도자훈련원의 아이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기쁨을 얻었다